북한이야기

우리는 북한에서 태어난것을 저주해요! (3회)

M 보리보리 0 954 2016.04.21 01:25

우리는 북한에서 태어난것을 저주해요! (3회)


-할머니 따라 새별로 가다


우리는 걸어서 고원역에 이르렀다. 그리고 기다리다 청진까지 가는 기차를 탔다. 차 안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우리는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짐을 깔고 앉았다. 그러다보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고 더군다나 짐을 잊어버릴 까봐 할머니와 나는 잠을 자지 않고 온밤 뜬눈으로 지새웠다. 다음날 우리는 청진에 도착했다. 청진역전에서 우리는 마른 옥수수빵을 조금씩 먹고 청진―학송까지 가는 기차를 탔다.


그런데 기차가 갈 시간이 되었는데 도무지 떠나지 않았다. 어째서 떠나지 않는가 물어 보니 앞에 끄는 기관차가 모자라 없다는 것이었다. 몇 시간 정도 기다리면 되는가 물어 보니 모른다고 했다. 우리는 찻간에서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런데 저녁이 되어도 차는 끄떡하지 않았다. 이렇게 날은 가고 4일째 되는 날 겨우 청진역을 빠져나왔다. 다음날 차는 학송 역전에 도착했다.


그런데 할머니네 집은 새별인데 학송에서 새별로 가자면 대단히 멀었다. 차도 없고 할 수 없어 우리는 함께 걸어서 할머니네 집에 도착했다. 할머니네 집에 도착하니 집에는 할아버지가 있었고 또 어떤 애기가 있었다 . 우리는 처음 그 애기가 누군지 몰랐다. 알고 보니 이 애기는 고모의 아이었다. 이름은 윤미였다. 윤미는 처음 우리를 보고 무서워 슬슬 피했다. 집은 매우 작았고 집들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집 앞에는 허술하게 판자로 만든 할아버지가 일하는 신발 수리장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우리를 보자 눈물을 흘리며 대단히 기뻐하였다. 그리고 조금 있다 작은아버지와 작은어머니 그리고 사촌 동생들도 와 모두들 반갑게 인사 했다. 모두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몇 시간을 보냈다.


할아버지는 신발 수리를 하셨고 작은아버지는 직장 일을 하였으며 작은어머 니도 할아버지처럼 신발 수리를 하였다. 할아버지는 신발 수리를 집 앞에서 하셨고 작은어머니는 아침마다 장마당에 나가 신발 수리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할머니네 집에 있으면서 학교는 다니지 않았다. 그저 집에서 윤미와 함께 놀곤 하였다.


윤미는 처음에 우리를 무서워하더니 얼마간 우리와 지낸 다음부터는 무서워 하지 않았다. 그리고 고모는 얼마 전에 중국으로 넘어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윤미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봐 주고 있었다. 작은아버지의 아이들인 사촌 동생들은 원래 학교 다닐 나이인데 학교도 유치원도 다니지 않고 집에서 놀고 있었다.


먹을 것이 없다 보니 학교에 다니지 않는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아침이 되면 죽을 잡숫고는 집앞에 나가 신발 수리를 하셨다. 그리고 할머니는 어디로 가는지 계속 아침을 잡숫고는 집을 나갔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사촌동생들하고 놀곤 하였다.


-할머니, 중국에 다녀오다


우리가 할머니네 집에 와서 얼마간 있던 어느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먹을것이 없어 중국에 있는 친척들한테서 지원받으러 가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집에는 나와 소연이, 그리고 윤미 셋이 있으라는 것이다. 할머니는 『10일동안 있다가 올 테니 그때까지 밥은 작은아버지 보고 지어 달라 하고 집은 너희들 세 명이 잘 보고 있어라. 올 때 맛있는 것과 멋있는 옷을 많이 가져올게, 좋지?』라고 말하고 다음날 아침 기차를 타고 집을 떠났다.


할머니네 집에 있는 동안 우리는 그저 집에서 사촌동생들을 데리고 놀곤 하였다. 아침이면 작은아버지가 와서 아침, 점심, 저녁밥을 지어놓고 직장에 나가곤 하였다. 그러면 우리는 작은아버지가 해주는 죽을 먹곤하였다. 그리고 설거지는 소연이가 하였다. 소연이는 온 하루를 윤미와 함께 보냈다. 저녁이 되면 나, 소연이, 윤미 세 명이 자는데 할머니가 없다 보니 무서웠다. 자리를 펴고 누우면 마치 누가 들어올 것 같이 무서워서 잠이 들지 않았다. 특별히 저녁이 되면 천장에서 쥐새끼가 바스락 바스락하고 소리내는데 이럴 때면 소름이 끼치면서 막 무서웠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또 보내고 드디어 10일이 되는 날이 왔다. 그런데 아침부터 기다리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오지 않았다. 이때 나는 너무 안타까웠다. 기차역전도 가보고 길에서도 기다리며 온종일을 보냈다. 무서움증은 더했고 혹시 할머니한테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았을까 걱정도 했다. 나는 맥을 잃고 집에 돌아왔다. 동생들도 할머니가 오기를 눈 빠지게 기다렸다. 나는 이때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 제일 안타까운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집에 들어와 조금 있다가 『이젠 할머니가 안 오겠지…』라고 생각하 고 앞마당을 나섰다. 그런데 내가 걸어갈 때, 뒤에서 소연이가 『오빠! 할 머니 할아버지가 왔다. 빨리 와!』라고 나를 부르는 것이다. 나는 이때 소연이가 거짓말하는 줄 알았다. 소연이는 나를 놀리려고 거짓말을 많이 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소연이 말을 듣고 혹시나 해서 집에 가보니 정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와 있었다. 너무 기뻐 달려가 할아버지 품에 안겼다. 그리고 눈물이 글썽해서 『할아버지, 어째 이제야 왔습니까?』하고 말하며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흑백 텔레비


할아버지는 나를 보고 『오, 기차가 없어서 이제야 왔다』라고 대답하였다 . 할머니는 맛있는 것과 멋있는 중국제 옷을 내놓고 우리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러면서 『너희들, 정말 용케 지냈구나. 이것은 선물이다』라고 말하 며 우리 앞에 내놓았다.


그리고 또 옆에는 큰 지함(紙函)이 있었다. 그걸 뜯어 보니 그 안에는 우리가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흑백 텔레비가 있었다.


나는 너무 기뻐 콩콩 뛰며 텔레비를 만져보았다. 이땐 흑색 텔레비가 대단히 귀중했다. 마을에 열 집이 있으면 겨우 한 집만 있었다. 나는 너무 좋아 어쩔줄 몰랐다. 할머니는 그 다음날 지원받은 물건들을 더러 작은아버지집 에 가져다 주었다. 그때 작은아버지네는 생활이 대단히 어려웠다. 작은아버지는 직장만 다니고 아무 일도 할 줄 몰랐다. 그래서 작은어머니가 신발 수리로 돈을 조금씩 버는데 네 명 식구가 먹고 살기 대단히 힘들었다 . 그래서 할머니는 먹을 것이 조금 생기면 계속 갖다 주곤 하였다. 할머니는 나와 같이 작은아버지네 집에 갔었는데 작은아버지는 그 적은 물건을 받 고도 너무 좋아 어쩔 줄을 몰라했다.


할머니가 지원받아 온 후에 우리는 옥수수죽이라도 조금씩 먹었다. 그런데 이때 이상한 일이 생겼다. 할아버지가 중국에서 지원받은 후부터는 신발수리를 잘 하지 않으시고 집에 있는 이불이랑 사발이랑 하나하나 팔아 버리는 것이었다. 어느날 내가 밖에서 놀다가 집으로 들어오려다가 할아버 지와 할머니가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할머니가 『중국으로 가려면 이 가구를 모두 팔아 돈을 모아야 하는데 사겠다는 사람이 없으니 야단이에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 말을 들었을 때 조금 놀랐고 왜 가구들을 파는지 알게 되었다.


하긴 뭐 이때 우리 마을에서도 중국으로 도망간 사람들이 많았다. 이때 할 아버지의 말이 들려왔다. 『아, 정말 야단이에요. 빨리 중국으로 가야겠는데… 여기서 가만 있다가는 굶어죽고 만단 말이오. 이제 저 조금 지원받은 것마저 다 두들겨 먹으면 그땐 끝장이란 말이오. 어쨌든 최선을 다해 물건 들을 팔아야겠소…』라고 말하는 할아버지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차 있었다.


이튿날부터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그리고는 저녁 늦게야 집에 돌아오곤 하였다.


이렇게 며칠 지난 어느날 할머니는 가구 장사꾼들을 데리고 왔다. 그리고 이 말저 말 하며 가격 흥정을 하는 것이었다. 흥정을 다했는지 장사꾼들은 사람들을 시켜 이불장, 그리고 거울, 식장, 밥상 등을 모조리 가져갔다. 그리고는 할머니한테 얼마간의 돈을 주었다. 할머니는 장사꾼들이 나간 다 음 이불장 자리를 쓸면서 『에이 할머니가 시집올 때 가져온 이불장, 이불 다 헐값으로 팔아버렸구나. …후…』라고 말하며 한탄하는 것이었다. 집안의 가구란 가구는 모조리 팔아버려 이젠 텅 빈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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