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야기

우리는 북한에서 태어난것을 저주해요! (1회)

M 보리보리 0 916 2016.04.21 01:20

우리는 북한에서 태어난것을 저주해요! (1회)


-아빠, 식량 구하러 떠나다


1998년 5월 아빠는 이대로는 계속 살아갈 수 없다면서 식량 구하러 떠나겠다고 하였다. 엄마는 눈물을 흘리며 『떠나세요. 가서 몸조심하고 식량을 많이 구해와요』라고 말하며 아빠의 배낭에다 마른 풀떡 몇 개를 넣어 주었다. 떠날 때 소연이도 아빠한테 『아빠 먹을 거 많이 가지고 와요』라고 말하면 서 아빠 품에 안겼다. 아빠는 『음, 먹을 거 많이 가지고 올 테니 기다려라 』라고 말하고는 집을 떠났다.


아빠가 떠난 다음 엄마는 아빠가 올 때까지 살아서 기다려야 한다며 신발 수리를 계속해 나갔다.


그런데 아빠가 없다 보니 또 한 가지 난관이 있었다. 전에는 아빠가 탄광에서 퇴근할 때 집안에 땔 석탄을 매일 가져왔는데 이제는 가져올 사람이 없었다. 그때 또 외할아버지는 늙고 굶어서 병에 걸렸었다. 외할머니도 건강이 좋지 못했다. 때문에 가져올 사람은 엄마밖에 없었다. 그런데 엄마는 신발 수리를 해야 되기 때문에 시간이 없었다. 또 나를 보내 자고 하니 너무 작아 근심이 될 것 같았다.


엄마는 매일 한 번씩 석탄 가지러 가기 위해 시간을 짜내었다. 일을 쉬지 않고 빨리 해치우고 시간이 생기면 옷과 배낭을 지고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리고 한 2~3시간 지난 후에 들어오곤 하였다. 들어와서는 석탄을 부려놓고 또 작업을 시작했다.


엄마는 귀하게 시간을 짜내서 석탄을 가지고 온 걸 보면 대단히 무거웠으며 양도 또 대단히 많았다. 나는 속으로 항상 「엄마가 매우 힘드시겠다」라고 생각하곤 하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엄마가 이렇게 애써도 풀죽도 배 불리 먹기 힘든 것이었다.


-외할아버지의 사망


바로 이때 외할아버지가 낮에 누워 계시다가 사망하셨다. 외할아버지는 눈을 감고 손을 배 위에 올려놓고 사망하셨다. 이때 외할머니와 엄마는 대단히 세게 울었다.


그때 외할머니는 온 종일 우셨다. 그때 동네 사람들이 모여와 집에 있던 널 들을 가지고 棺(관)을 만들어 거기에다 외할아버지를 넣어가지고 산에 묻었다. 나도 매우 슬펐다. 이제 내겐 외할아버지가 없구나 하고 생각하니 더욱 슬펐다. 이렇게 나의 외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그것도 풀죽도 제대로 잡 수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이후에도 엄마는 계속 힘들게 일해 나갔다. 시간이 있으면 신발을 수리하고 시간만 있으면 석탄 지러 가곤 하였다. 나는 이런 엄마가 불쌍했다. 그래서 하루는 내가 엄마에게 『엄마, 엄마가 힘든데 제가 석탄 지러 가 보겠어요』라고 했다. 그러자 엄마는 『안된다. 대단히 힘들단다』라며 안 된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내가 계속 가겠다고 졸라대자 엄마는 한번 가 보라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배낭을 지고 석탄 가지러 버스 역전으로 갔다. 가보니 낡은 버스가 맥을 잃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한 아줌마에게 『저 버스 안 가요?』라고 물어보자. 하는 말이 『저 버스는 기름이 없어 못 간다』하는 것이었다.


이러면 어찌 하는가? 탄광까지 거리가 10리는 되었다. 걸어가자고 해도 1시간이 걸릴 것이고 더군다나 힘들 것이었다. 할 수 없이 나는 한 번 가보자 하고 걸었다. 절반도 못 갔는데 다리가 아프고 맥이 없었다. 그래서 한번 쉬고 다시 걸었다.


탄광에 도착하자 석탄 무더기가 쌓인 곳에는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모여 탄을 줍고 있었다.


이 사람들이 석탄을 줍기에 나도 거기에 있는 검은 것들을 다 배낭에 집어 넣었다. 몇 덩이 넣지 못했는데 배낭이 다 차 집으로 돌아오려고 내려왔다 . 배낭이 작아 그리 무겁지 않았다. 그런데 한참 가다보니 완전히 주저앉을 것처럼 다리가 아팠다. 그래서 쉬고 또 쉬어가지고 겨우 집에 돌아왔다. 나는 이때 엄마가 얼마나 맥이 없었을까 하고 다시 생각해 보았으며 이런 엄마가 불쌍하였다.


집에 오니 엄마는 내 배낭을 받아가지고 헤쳐보았다. 그런데 이게 뭔가. 모두 뚝덩이들이었다. 석탄이 아니라 완전한 돌들이었다. 엄마는 이걸 보고 웃으면서 석탄이 어떤 건가 가르쳐 주며 다음부터는 호미를 가지고 가서 잘 파 오라는 것이었다. 이때 나는 대단히 부끄러웠다


-에미야, 맥을 잃지 말고 불사조처럼 일어나야 한다』


다음에 나는 또 석탄을 지러 갔다. 이번엔 호미를 가지고 가서 하나하나 골라 가지고 왔다. 그런데 어찌나 무거운지 어깨가 아팠다. 집에 와서 헤쳐 보니 이번엔 완전한 석탄이었다. 나는 대단히 기뻤다. 그런데 어깨가 대단히 아팠다. 그래서 헤쳐 보니 글쎄 피부가 시뻘겋게 벗겨진 것이었다. 이때 나는 많이 아팠다. 내가 이런데 엄마는 얼마나 힘들까 싶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엄마는 몸이 불편하다면서 머리가 아프다고 했고 기침까지 했다. 엄마는 처음에는 감기겠지 하고 가만 있었는데 점점 더 아팠다. 그래서 병원에가서 진찰해 보니 「늑막염」이라는 병이었다. 이 병은 너무 무거운 것을 져서 늑막에 물이 찼다는 것이다. 이 병을 치료 하려면 약을 많이 써야 되지만 기본은 운동을 하지 말고 가만히 휴식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엄마가 휴식하면 우리 집안은 누가 먹여 살린단 말인가? 엄마는 이런 진단을 받고도 받은체 만체하고 계속 일에만 열중했다. 원래 하루 24시간이라면 20시간은 쉬어야 되는데 엄마는 한두 시간씩 쉬곤 하였다 . 이러다 보니 엄마의 병은 날이 갈수록 더 악화되었다. 외할머니는 엄마가 아파할 때마다 『야, 에미야. 맥을 잃지 말고 불사조처럼 일어나야 한다』 라고 계속 힘과 용기를 더해 주곤 하였다. 이러면 엄마는 계속 힘을 되찾고 일어나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낮에 집에 누워계시던 외할머니가 숨을 가쁘게 몰아쉬다가 사망하셨다. 엄마에게 그렇게 힘과 용기를 주시던 외할머니도 이젠 돌아가 셨다. 엄마는 외할머니가 사망하신 걸 보고 거의 까무라칠 정도로 우셨다.


『어머니, 이렇게 죽 세 끼도 변변히 먹지 못하고 돌아가시면 어떡해요. 난 혼자서 어떻게 살아가란 말입니까?』라고 통곡하며 우는 엄마의 울음소리 는 온 마을에 울려퍼졌다.


나와 소연이도 그때 슬프게 울었다. 나와 소연이는 이젠 외할아버지, 외할 머니를 다 잃어버린 셈이었다. 우리는 엄마와 함께 외할머니 곁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젠 외할머니를 내가자니 棺이 없었다. 그래서 의논하던 끝에 우리 집 앞에 있는 나무 창고를 허물어 그 나무로 관을 만 들어 거기에다 외할머니를 눕혔다.


관은 썩고 부슬부슬 떨어질 정도였지만 할 수 없었다. 외할머니를 소달구지 에다 태우고 산에 올라가 외할아버지 곁에다 눕혔다. 지금도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나란히 누워 계실 것이다.


-엄마의 사망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후부터 엄마는 병이 더 악화되어 자리에 눕게 되었다 . 소연이와 나는 학교도 못 가고 집에서 엄마를 간호해 드렸다. 소연이는 엄마의 머리에 수건으로 찜질도 해주고 다리도 주물러 줬으며 나는 석탄을 날라오고 집에 불을 땠다. 그런데 이렇게 앓는 엄마에게 미음을 쑤어 줘야 하는데 풀죽도 겨우 먹는 상태에 어떻게 미음을 쑤어 주겠는가? 집에는 먹을 것이 다 떨어졌다. 그러자 엄마는 또다시 일어나 신발 수리를 시작하였다. 아픈 몸에 허약하고 얼굴은 창백하며 찌푸린 인상이 당장 쓰 러질 것 같은 모양이었다. 오는 손님들도 엄마를 근심해주며 어떤 사람들은 약도 갖다 주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도 엄마에겐 힘이 되지 않았고 오히려 병은 점점 더해갔다.


그러던 어느날 엄마는 갑자기 나보고 병원에 가서 의사 선생님을 데리고 오라는 것이었다. 소연이는 엄마 곁에 있게 하고 나는 병원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의사 선생님을 만나 우리 엄마가 아픈데 빨리 가자고 재촉하고는 집으로 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엄마가 마지막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었다. 내가 엄마한테 다가가 『엄마 , 왜 그래?』라고 물어보았다. 그런데 엄마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아무 대답도 없이 손만 내 저을 뿐이었다. 이러던 엄마가 갑자기 숨 쉬던 것을 뚝 그치고 손을 맥없이 떨구는 것이었다. 내가 웬일인가 손을 들어 심장에 대보니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심장이 뛰지 않았다.


갑작스레 놀란 나는 『엄마! 엄마!』 하고 계속 불러보았으나 눈을 뜬 엄마는 아무런 반응없이 꼼짝 않고 있었다. 이제서야 나는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너무 어처구니 없어 놀라 한동안 멍청해 있었다. 이러다가 옆에서 소연이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야 정신을 차렸다. 어느새 나의 눈에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글썽해 있었다.


소연이도 내가 우는 것을 보고 알아차렸는지 자기도 엄마를 붙잡고 『엄마 ! 엄마!』하고 울었다. 이때 우리의 울음소리를 들은 마을 사람들이 달려와 엄마가 돌아가신 걸 보고 눈물을 흘리며 우리를 막 떼놓았다. 어느새 우리집에는 사람들이 꽉 찼다. 나는 마을 사람들을 비집고 밖으로 나와 벽에 기대고 통곡하며 울었다. 『엄마! 엄마!』 하고 엄마를 부르며 우는 나의 울음소리는 온 마을에 울려퍼졌다. 소연이는 아직도 엄마 곁에서 슬피 울고 있었다.


내가 밖에서 집안으로 들어와 보니 어느새 마을 사람들이 엄마를 이불로 덮어 놓고 그 겉에다 보를 쳐놓고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다시 한번 눈물을 흘리며 슬피 울었다. 마을 아주머니들은 우리를 달래며 울지 말라고 위로해 주었으나 「이제는 엄마가 없는데 내가 어떻게 살아갈까」 하고 생각하니 더 슬펐다. 엄마가 죽은 이날 밤 나는 엄마 곁에서 자려고 했으나 마을 사람들이 안된다는 바람에 옆집에서 잤다.


http://www.nkdream.com/client/note/viw.asp?p_idx=10&cpage=1&cate=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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