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야기

북한의 강제 납치와 나의 북한 생활-2회

M 보리보리 0 1,550 2016.04.21 01:17

북한의 강제 납치와 나의 북한 생활-2회


◇ 북한의 강제 납치와 나의 북한 생활

* 이 글은 2001년 2월23일 북한인권시민연합 2001년도 전기총회에서 행한 이재근씨의 증언 녹취록이다.


<질의응답>


1. 당원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당원증을 받았으며, 고문을 당했다면 어떤 고문을 당했는지.


고문 받은 적은 없었다. 북한에서 나를 억류시킬 때는 자기 나름대로 생각이 있었기 때문었을 것이다. 7명이나 억류되어있는데, 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이고, 어떤 사람은 중학교 중퇴한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전부 초등학교 이상의 학력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다 머리가 약간씩은 돌아가는 사람들이었다. 대개 북한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적화통일을 위한 대남 연락소 같은 곳에 보냈다. 나도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중앙정치학교에서 학생으로 3년동안 훈련받고 별짓을 다했다. 이것 저것 하면서 그 학교를 졸업했는데 결국 나는 대남 연락소에 있지 못했다. 그 이유는 우선 사상적으로 낙후하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의 경우에는 7명 중 4명이 연락소에 머물게 되었다. 그 중에 지금 중앙당에 있는 사람도 있다. 강병일이란 사람이다.


나는 함남 함주군 선박 건조현장에 나가서 노동을 했다. 그곳에서 주로 선반작업을 했다. 이 사람들은 나의 사상만 바로잡으면 한국에 가서 내가 변절하지 않고 간첩활동에 이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를 사회에 내보내 결혼도 시키고 집도 배정해주어 살림도 할 수 있게 해주면서 계속 나를 감시하며 지켜보는 것이었다. 그 사람들이 10번 이상 나를 찾아와 설득했었다. 승용차를 가지고 밖에 대기시켜놓고, 군보위부 군․당 사람들이 돌아보고 나의 건강도 이상 없고 사상도 이상이 없으면 바로 실어갈려는 태세인데 내가 계속 말썽을 부리고 하니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 사상적으로 덜 익었다는 판단을 내리고 부적합 판정을 내렸기 때문에 그냥 두게 되었다. 내가 입당할 수 있었던 것은 어떻게든 북한에서 나를 이용하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나는 1986년에 입당했다. 그 때 중앙당에서 대남연락소 쪽에서 3개월 정도 있었는데, 그곳에 53명 정도 있었다. 이들은 몽땅 다 납북 어부들이었다. 강냉이죽만 먹어서 먹는 것도 부실했는데 석달 정도 이들에게 밥도 잘 먹이고 고기도 주고 해서 혈색을 좋게 해서 집에 보낼 때는 부인들 옷이나 아이들 옷을 줘서 보냈다.


이러한 것을 보여주면서 간부들이 하는 말이 "당신들의 운명은 당신들이 개척해야 하는데 사회에 나가서 왜 자꾸 말썽을 일으키려 하는가? 당신네들이 주먹이 세다고 해서 주먹이나 쓰고 일은 하지 않는가" 라고 했다. 결국 우리들이 사상적으로 바르게 서지 못해서 이런 현상이 나온다는 결론이 나왔다.


반면에 우리들은, "아무리 잘한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입당도 못하고 하는데 그게 무슨 하등 필요가 있는가" 라고 하자, 중앙에서 생각이 달라졌다. 그래서 입당을 해서 써먹을 만 한지 판단하자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내가 86년도에 입당하고 87년도에 정당 입당했다. 입당했는데도 3번 정도 공안에서 나를 찾아왔다. 어쩔 때는 내가 몸이 아플 때도 있고 어떤 때는 싸움을 해서 공장간부를 때린적도 있었다. 그리고 점차 내 나이도 들어가고, 그 후에 식량사정도 나빠지고 그들의 발길이 끊어지면서 그냥 생활하게 되었다.


2. 학교에서 애들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지?


교육이란 것은 너무 한심하다. 내가 배우지는 못했지만, 고등학교 마친 아이들이 알파벳 모르는 아이들도 있고 대학 나온 아이들이 기본적인 회화도 안된다. 그게 무슨 대학생인가. 이러한 현상은 다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북에서는 오직 김일성 김정일 우상화 사업이 강조되기 때문이다. 시간적으로 따져보면 4시간 강의 들었다면 2시간은 김일성 김정일에 관한 내용이다. 그 다음은 역사라든가 수학, 국어 등을 가르친다.


그 뿐만 아니라 인민학교 3학년만 되어도 봄에 농촌을 지원 나가게 된다. 지원 나가서 식량증진을 뛰게 되는데, 약 한달 정도 강냉이 이식을 하고, 이게 다 끝나면 다시 돌아가서, 가을이 되면 콩이나 볏단 수확을 나간다. 그 다음에 중학교 고등학교 올라가면 전문적으로 1년에 3개월 4개월 동원된다.


그것은 둘째치고 사회적으로 제기되는 것도 많다. 학생들을 불러다가 도로 닦기를 하고 이런 저런 일을 다 시키게 된다. 따라서 아이들이 공부할 시간이 없다. 그리고 대학생의 경우에는 1년에 교도대 훈련이 약 6개월이다. 그리고 모내기가 적어도 2-3개월 지속된다. 심는 것부터 시작해서 김까지 다 매주기 때문에 3개월 정도 소요된다. 가을걷이하면 1개월이다. 그렇게 해서 다 계산하면 1년에 학습이 대부분 밖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제대로 학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나머지 시간이 있는 것도 김일성 위대성 독창성을 가르치느라 실제 사회에서 사용 가능한 학습을 가르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학생들을 보면 인민학교 2-3학년정도에 담배를 피우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에서 아무리 못피게 하려해도 안된다.


내가 처음 가서 대남 연락소에 3년 동안 훈련하고 있을 때 있었던 일이다. 그 당시는 내가 나이도 28살 정도의 젊은 시절이라 주먹도 쌨다. 어느날 길을 가는데 중학교 1-2학년으로 보이는 아이가 나에게 담뱃불을 빌려달라고 했다. 무엇하려고 그러느냐 물으니 담배를 피우려고 한다고 했다. 그래 내가 발길로 차버렸다. 그래서 그 아이는 시궁창에 나자빠져서 울고있었다. 나는 너무 괘씸해서 그냥 길을 가는데, 뒤따라오는 사람이 하는 소리가 애를 차면 어떻게 하느냐고 했다. 그래 나는 왜 그랬는지 그러면 그 애한테 물어보고 와서 얘기하자고 했다. 그 애가 나에게 담뱃불을 달라고 해서 너무 괘씸해서 때렸다고 말하고, 아이가 그렇게 말하는게 정당한가 라고 말하니, 그 사람은 그래도 그렇지 그런다고 애를 때리면 어떻게 하느냐 하고 오히려 그 아이를 역성드는 것이었다. 전반적인 사회의 흐름이 다 그렇고 하니깐, 다른 어른들은 담배를 못피워서 길길 해도 그 애들은 어디서 구했는지 하얀 담배를 구해서 다 피운다. 다른 것은 다 좋은데 아이들 교육은 제로다. 이대로 가다가는 앞으로 몇 년 몇 십년 못가서 나라가 망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소리를 보위부에서 안들었기에 나를 잡아가지 않았는지는 모르겠다.


3. 북한 주민들과의 관계에서 그들의 경계대상은 되지 안았는지.


주민들은 괜찮다. 자기가 믿을 사람들은 있다. 그런데, 처지가 비슷한 사람들은 다 통하기 마련이다. 북한사람들이 다 나쁜 것이 아니다. 나쁜 사람은 간부들이다. 또 군․당․보위부․안전부․행정위원회․검찰서 이런 사람들은 우리들의 적이지만 그 외의 사람들은 다 우리들과 이야기하면 통한다. 자기들도 생활이 어떻다고 말하고, 자기네들이 먹을게 있으면 함께 나누어 먹었다. 콩 한 조각도 나누어먹는 그런 정서는 다 있었다. 그러한 인정은 북이나 남이나 다 같다. 그런데 간부들이 문제다. 그 사람들은 얍상하기 그지없고, 안전원들도 나이 많은 사람에게 여보시오 이렇게 존대하는 법이 없다. 이 새끼, 저 새끼라고 욕을 한다. 그 사람들은 욕이 아니면 일을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군 당에 가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군당무원 최고통치자라고 해서 고함이나 치고 앉아있지 다른 게 나올게 없다.


4. 김일성․김정일에 대한 반대움직임은 없었나.


그런 것은 보지 못했다. 1998년 7월 25일이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였다. 북에서는 그 선거를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만약에 선거장에 들어가서 조금이라도 허튼 짓을 한다거나 뭐가 잘못되면 그 사람은 살아남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 이전에 그런 일이 없었는데 98년에 그 선거장의 김일성․김정일 사진에다 먹물을 뿌리고 꽃바구니를 걷어차고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함흥에서 세건 정도 있었고 함경에서도 한 건 있었다. 만약 그런 사람이 발각되면 아무도 모르게 붙잡혀 사라지게 된다.


5. 납북 어부 중에서 7명이 잔류했는데, 북한에서 나름대로 목적이 있어서 잔류시켰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곳에서 잔류한 다른 사람들은 어떠한 일을 하며 생활했고, 북측에 어떤 도움이 되는 일을 했는지. 즉 북에서 납북자들을 어떤 식으로 이용하여 어떠한 것을 얻었는지.


납북된 사람 중에서 중앙당에서 근무한 사람이 세 명있었다. 그중 한사람은 중앙당 대남연락소 후반부 지도원을하는 강경일이라는 사람이고, 두 사람은 한국을 드나드는 일을 했다. 정치학교에서 남조선 정치부, 즉 남조선 교육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들의 생활은 좋았다. 그 사람들은 당에서 고기도 제공해주고, 다른 사람은 친인척 집에 가지 못해도 그 사람은 다 보장해주고, 사탕도 다른 북한사람들은 먹지도 못하지만 그들 집의 냉장고에는 사탕이 있었다. 그들 생활은 기탄 없이 했다. 사회에 나간 사람이 있는데, 사리원의 기계공장에서 직장생활 하는 사람이 한 명 있고, 다음에 사리원에서 의대 졸업하고 외과 의사로 근무한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 사람들도 가보니까 생활이 괜찮았다. 시골에서 무슨 수술하자면 외과의사선생님 손을 빌려야 하기 때문에 가게에서 술이라도 좀 갖다 주고, 이래저래 갖다주기 때문에 생활하는데 기탄이 없다. 그런데 그 사람들도 자유가 감시당하는 것 같다.


나도 북에 있을 때 한 번 집을 지었는데, 당비서가 와서 한다는 소리가 "저 사람이 무슨 힘이 있어서 집을 짓는가, 친척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데 무슨 힘이 있어서 집을 짓는가" 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안전원에게 내 뒤를 캐보라고 하고, 위협을 주었었다. 내가 가만히 생각해보고, 어떻게 처리할지 알기 때문에 회의가 끝나고 그 사람의 뒤를 따라가서 말했다. "당신이 무엇 때문에 나를 잡아먹지 못해서 그리 하는가. 만일 당신이 나에게 그렇게 한다면 나도 당신에게 할 말이 많다. 내가 그것을 중앙당 지도원에게 그대로 보고하겠다." 라고 하니까, "무엇 때문에 그리하겠는가" 그래서, "당신이 입당시켜준다고 해놓고 여자를 몇 명이나 희롱하지 않았느냐" 라고 막 터놓고 이야기했다. 그 사람은 입당시켜준다고 말하고 그랬었다. 실제로 그 일이 여러 사람에게 들켰었다. 그 사람은 거의 색마였다. 작업장에 들어가서 희롱하는 장면도 여러 사람이 보았었다. 내가 본 것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자. 그 다음부터는 집 짓는데 기술자도 보내주고 차도 대주고 여러 가지로 도와주었다. 그렇게 나는 정치학교에 다녔던 것이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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